먼저 발견한 사람이
발로 걷어차서
경계심을 알리던 기피 버섯,
산지 구입가의 20배 이상으로
도시에서 판매
송이 Kg당 중국은 2만 원인데
일본은 200만 원
중국의 한 젊은이(당시 23세)가 샹그릴라(香格里拉)에서 인근 주민들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그해(1993년) 마지막 송이버섯을 헐값에 구매하여 곤명(쿤밍, 운남성 성도)로 향했다.

하늘이 내린 자연의 싱그로움이 가득한 샹그릴라에서 곤명까지는 차로 이동해도 3일이 걸리는 먼 거리였다.
샹글리아에서 1kg에 5위안(1,000원)에 구입한 송이버섯은 차가 한 구간 지날 때마다 kg당 10위안(2,000원) 씩 올라갔다.
결국 운남성의 대표 도시인 곤명에 도착했을 때는 송이버섯은 1kg에 100위안(20,000 원, 구입 가의 20배)이 되었다.
23세의 이 시골뜨기 청년은
1993년 한해에만
송이버섯 판매로
약 120억 원을 벌었다.
중국 운남성과 샹그릴라의 자연산 송이(중국 자료 갈무리)
호북성이 고향인 라오차이(老蔡)는 요령성 대련시의 외국어 대학교 일본학과를 졸업하고 당시의 시대의 흐름을 따라 1987년 여행 가이드로 일하기 위해 운남성 곤명으로 갔다.
라오차이는 특히 일본어를 잘해서 여행사 옆에 있는 외국무역회사의 통역 업무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당시 쿤밍에 온 일본인들이 조금은 더러워 보이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소나무 곰팡이(송이버섯)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질문해 오는 데 대하여 의아해했다.
당시에 운남지역 사람들은 버섯을 매우 좋아하지만 송이를 먹는 습관은 전혀 없었다.
특히1980년대 운남성 현지인들은
송이버섯을
썩은 닭똥 나무라고 불렀으며
버섯을 채취하는 농부들은
송이버섯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
발로 걷어차서 경계심을 알리면
모두가 코를 가리고 지나갔다
당시 라오차이가 곤명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송이버섯이 다른 버섯들과 함께 허름한 길바닥에 쌓아두고 1kg에 5마오(100 원)에 팔리고 있었다.
그때 곤명에 무역을 하러 온 일본인들은 그것을 보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천지에서
보기 드문 최고의 송이버섯,
전설의 송이버섯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라오차이가 안내하던 일본인 일행 5명은 1인당 20원(4,000원) 예정된 식사를 즉각 취소하고,
1kg에 5마오(100원) 하는 송이 20Kg을 2,000원에 구입하여 상상도 못한 값싼(1/10가격) 음식으로 식탁을 차리고는 최고의 식탁이라고 자축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이 사람들은 이 신기한 체험을 일본의 신문 등에 기사로 썼고, 언론은 그들을 추적하여 운남성 현지를 방문했으며, 그때부터 운남성 송이는 일본인들에게 최고의 핫한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일본인들은 중국에 와서 송이버섯을 찾아다녔지만, 송이가 어느 지역에 얼마나 있는지 헤아리지 못했으며 당시에 송이버섯 생산지는 곤명인근 지역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3년 샹그릴라(香格里拉)가 세상에 알려지자 드디어 일본인들도 샹그릴라가 송이버섯의 주산지임을 알게 되었다.
현재는 전 세계 송이버섯의 75%가 중국에 있고 그중 80%가 운남성 서쪽 샹그릴라 지역에 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송이버섯의 원산지 매입가는
1kg당 80위안(16,000원) 이고
일본으로 운송되면 1kg당 1,000달러(120만 원)에 팔리고 있었다.
라오차이는 아직도 일본인들의 송이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일본에서 10여 년 동안 거주하는 동안 송이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 돈, 인맥, 안정된 삶 등 모든 것을 가져다주었다.
라오차이는 일본에서 풍요롭고 편안하게 은퇴할 수 있었지만, 그는 항상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언젠가는 중국인들이 송이를 먹게 될 것이라고…
“왜, 많고 많은
14억 중국인들 중에
송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까” ?
1980년대부터 2008년까지 중국 운남성 송이버섯의 유일한 소비국은 일본이었다.
드디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8월 8일 개막식 당일, 라오차이는 일본 신문에서 중국 올림픽 국빈 만찬에 송이버섯이라는 요리가 올라왔다는 기사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자기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국빈 만찬에 나올 수 있는 음식은 귀할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여 이제는 중국인들이 송이버섯을 귀하게 여길 것이 분명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라오차이는 즉시 중국으로 돌아 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중국으로 돌아온 라오차이는 아직은 중국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송이버섯 사업을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현재 라오차이 의 사업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를 차이 회장이라고 부르며 그의 인기있는 SNS인
'Shangri-la on my mind' (위쳇 /香格里拉在我心)와
명나라 시인 오기(吳起)의 시구 '빙설견송회(氷雪見松篁)'에서 따온 자신의 공장과 대형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